느린 걸음으로 돌아가다 만난 계양산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계양산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로 둘러싸여 동서남북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길의 시작점이다. 인천의 진산으로 불리며 다양한 휴식공간으로 도시민들의 휴식.
┃속도에 지친 몸을 여유로이 달래주는 숲길┃
계양산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한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해발 395m의 산으로, 인천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찾는 명산이다. 일찍이 이 지역에서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이 자란다고 해서 계양산으로 불렸지만 현재 이 나무들은 계양산에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전통 국궁장인 연무정에서 시작되는 계양산 등산로는 등산객들이 애용하는 루트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채 10분이 되지 않아 바위봉우리와 육각정이 어우러진 계양산성을 만나게 되는데, 계양산성은 계양산 주봉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정상에 올라보면 산성 내부가 다 보인다. 육각정 아래의 성벽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훼손되어버린 산성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부분이 육각정 바로 아래.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포개지듯 잘 쌓여 1천600년의 무게를 이겨온 계양산성의 성벽을 볼 수 있다.
계양산성을 뒤로하고 자연석과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된 등산로를 걸어 오르면 땀이 송글하니 맺힐 무렵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계양산 정상에 닿게 된다. 오르는 길에는 어린아이부터 나이든 부부까지 수많은 등산객들이 함께 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길이 험하지도 않을 뿐더러 잘 정비되어 어린아이들도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계양산 정상은 가슴까지 시원해질 정도로 사방이 탁 트여 서쪽으로는 영종도와 강화도 등 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너른 김포평야와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시 전경이, 북쪽으로는 신도시개발단지인 인천 검단지구와 고양시가, 남쪽으로는 인천의 시가지가 펼쳐진다. 이렇게 탁 트인 전망 때문에 일출과 일몰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도시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과 산 너머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낙조는 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산객들을 감동시킨다. 일몰 후 불 밝힌 계양구의 야경 또한 색다른 멋을 전해준다. 40분 정도면 정상에 다다를 수 있고 도심지와 바로 인접해 있어 계양산에서 일출을 보고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일몰과 야경을 보며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길 위의 휴식처’라 불릴 만하다.
계양산 정상에서 계양문화회관 방향으로 내려오면 팥배나무, 산사나무, 때죽나무, 소나무, 물푸레나무, 참나무 등이 참나리 등 41종 1만5천여 본의 야생화와 어울려 있는 계양산 산림욕장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휴면기라 쓸쓸한 느낌이 드는데도 잘 꾸며진 생태길에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림욕장 전체를 430m 길이의 목재 데크로드로 연결해 산림욕을 즐길 수 있게 하였고, 이용객들이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건강지압로를 설치해 가족들이 건강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이곳 산림욕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널찍한 자연생태관찰로로, 밀식재된 벚나무와 갖가지 식물들이 멋진 풍경을 만든다.
잔디밭을 배경으로 세워진 ‘문순공백운이규보선생시비’도 눈에 띈다. 고려 고종 때 인물인 이규보가 고종 6년(1219) 계양도호부사로 13개월 간 재임하며 남긴 수많은 시문은 훗날 <동국여지승람>과 <부평읍지>의 기틀이 되고 부평 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기 때문에 계양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림욕장에 이규보를 기리는 시비를 세운 것이라 한다.
┃과거를 지나 미래로 향한 길┃
서울외곽순환도로 계양나들목에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북인천나들목으로 연결되는 계양산길에는 우리네 삶의 흔적이 담긴 문화재들이 있다. 계산역 사거리를 지나 신호등에서 유턴하면 어사대길이 나오는데, 어사대길 중간의 부평초등학교 안에는 옛 관아 건물인 부평도호부청사가 있다.
경인고속도로 부평나들목에서 계양산으로 이어진 길 끝에 있는 경인교육대학교 앞에는 과거 유림들이 학문을 갈고 닦던 부평향교가 있다. 옛날 부평향교에는 일반적인 향교 건물 배치인 대성전, 동·서 양무, 동·서 양재 외에 전사청·공수고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홍살문과 향교 사이로 자동차도로가 나면서 뚝 끊긴 우스운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문화재 관리에 소홀한 우리의 의식을 보는 듯해 씁쓸한 장면이다.
어렴풋한 역사의 흔적만을 간직한 계양산 앞길을 따라 강화 방면으로 달리면 현대 기술을 아우르는 최첨단 공법으로 육지와 영종도를 이어주는 영종대교로 이어지고, 미래를 향한 하늘길이 열려 있는 인천국제공항에 닿게 된다. 또 부평나들목을 통해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세계로 이어진 바닷길로도 연결된다.
고속의 길을 벗어나 만난 계양산 앞길은 오직 길만 보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던 일상에 쉼표를 찍고 조금 돌아가도 그렇게 늦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바다로, 하늘로, 도심으로 향하는 길 중심에 솟아오른 계양산은 소박하지만 따스한 우리네 정을 간직한 채 속도에 지친 사람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길 위의 휴식처’이자 새로운 길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